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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과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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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오키나와의 눈물
작성자 강법운 작성일 2020.06.23
조회수 220 첨부파일

 

방울, 오키나와의 눈물

 

"메도루마 슌"의 <물방울>비평

 

강법운

 

 

메도루마 슌의 소설에는 류큐의 자연과, 전통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일본 본토와 미군에 대한 오키나와인의 생각을 상세히 묘사하고 문학성을 높이는 상상력까지 갖춘 특징적인 일본 작가이다. 메시지를 품은 그의 작품으로 일본 문단과 정치에서까지 오키나와 문학의 이질적이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활동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와 관련된 신문, 잡지, 평론 등을 발표했고 사회문제에 대한 소신을 힘껏 표출하며 시위 등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메도루마 슌이 오키나와의 비극적 역사를 작품에 투영한 계기가 필자의 눈을 끌었다. 그가 작품에서 오키나와의 문제를 폭로하는 것은 가족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1960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젊은 시절 본토로 넘어가 방적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는 오키나와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런 간접적 경험을 한 그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고, 어린 메도루마 슌 또한 황민화 교육을 통해 생긴 의무감으로 일본을 위해 힘쓰려 자원했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만류가 있었지만 메도루마 슌은 그러한 만류가 일본 발전에 해가 된다며 오히려 비난한다. 하지만 곧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후회를 느낀다. 일본 본토의 차별은 지속적으로 심화됐고 전쟁에서 오키나와인들을 그저 고기방패로 사용했다. 이런 사태를 보며 그의 아버지 또한 차별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효용가치가 없어진 오키나와인들을 학살하기까지 했기에 일본 본토군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은 점점 오키나와에 뿌리 깊게 박힌다. 이런 주변의 정신적 피해는 메도루마 슌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쳤고 이후 그의 소설 주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다면 오키나와는 왜 차별을 받을까?”. 이 원인을 찾으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키나와는 17세기까지 류큐왕국이라 불리며 주변국의 무역지로 큰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 계획을 세우던 때 류큐에도 출병 명령을 내리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막부와 여러 문제로 충돌이 있던 류큐를 일본은 정벌하기 시작했다. 결국 류큐는 다른 나라였지만 메이지 정부에 의해 강제로 편입됐다. 이렇게 류큐와 일본은 힘에 의해 융합되는 듯했으나 다른 점이 많았던 둘은 인식의 차이를 버티지 못했다. 오키나와가 차별받는 이유는 바로 속국이라는 인식이 발전한 결과, 그리고 융화되지 못한 문화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했다. 이렇게 일본이 침탈해서 빼앗은 류큐 왕국에 대한 차별은 조선인을 차별하던 인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한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오키나와와 같은 차별을 받으며 아픔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융화되지 못한 문화는 <물방울>에서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거의 모든 오키나와 원문 소설이 그렇듯 대화는 오키나와의 방언으로 진행된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 또한 한국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고 제주도, 경상도 등의 방언을 쓰는 경우가 많다. 언어가 다르다는 정도성은 문화적 차이를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오키나와는 차별의 통증뿐만 아니라 전쟁의 아픔이 더해져 땅의 비극성은 더욱 강조된다. 오키나와에서 전쟁의 상흔을 유독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유일하게 일본에서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크게 2가지 까닭으로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싶어 했다. 먼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기 않기 때문에 더욱 원활하게 큐슈를 포함해 일본에 직접적으로 공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비행시설이다. 거리적으로 타국과의 접촉이 쉬웠고 그 당시 발전된 항공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오키나와에 대대적인 공격을 진행했다. 셀 수 없는 인명피해와 류큐의 문화유산이 소실되는 피해를 겪었다. , 병사 수가 부족했던 일본군은 미군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의 사람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징집했다. 징집된 사람들은 총알받이로 사용됐을 뿐 아니라 미군에게 포로가 되면 강간당하고 잔인하게 죽는다는 거짓 인식을 퍼트려 주민들에게 집단자결까지 강요했다. 때문에 당시 본토군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은 적군인 미군보다 심했다고 여겨진다.

 


 ‘메도루마 슌과 그의 <물방울>은 여러 비극이 겹쳐 탄생됐다. 실제 비극에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더해져 현실을 담은 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도쿠쇼는 오키나와 전투의 생존자로 강단에 올라 50년 전 생존자의 입장으로 강연을 하며 돈을 벌었다. 사실에 꾸며낸 이야기를 더해 더욱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었고 매년 오키나와 위령의 날이 오면 전쟁체험담을 학생들에게 강연했다. 이를 본 아내는 비극적인 전쟁에 허구를 섞어 파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충고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도쿠쇼의 오른 다리에 큰 물혹이 생기게 된다. 갖은 방법을 사용하여 병의 원인, 치료방법을 찾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기이한 병으로 발끝에서 급기야 물이 떨어졌고, 물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동료 군인들이 찾아와 고쿠쇼의 발가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마셨다. 그 중에는 마지막까지 도쿠쇼와 함께 했던 죽은 동료도 있었다. 소설에서 언급된 주인공의 과거로 물혹에 대한 의문은 그의 죄책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가능해 졌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 물방울이라는 신체이상증세로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죄의식과 마주 본 그는 동료였던 이시미네에게 사과를 한다.

 

 

 도키오가 과거의 죄책감을 외부인에게 노출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전쟁의 아픔이 완전한 해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과가 지극히 고백적이고 소심한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과를 통해 개인으로서의 죄의식이 완화된 것이지 전후 오키나와 사회의 상흔이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것은 일본이 오키나와의 전후 상처를 온전히 해소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며 일본 본토에 향한 비판이 섞여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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