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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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상영 | 작성일 | 2020.06.26 | ||
조회수 | 221 | 첨부파일 | 물방울 에세이.hwp | ||
물방울 2015102900 일본어학과 한상영 메도루마 슌의 소설 ‘물방울’을 통해 오키나와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상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방울’은 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메도루마 슌의 작품집입니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 일본 본토와 미국인에 대한 오키나와인의 의식을 해박한 지식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작가로, 일본 문단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11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물방울」은 그만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메도루마 슌은 소설 속 배경이나 인물을 오키나와 내부에 한정하여 단순히 ‘전후’의 ‘기억’을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군기지와 오키나와의 다양성을 상품화하거나 기지문제에 침묵하는 오키나와인 스스로의 성찰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키나와 작가로서 지금까지 문학계에서 무거운 주제로만 삼았던 오키나와 전쟁을, 공식기록과 증언록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개인의 깊은 감정을 통해서 그려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과거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약함과 어리석음까지도 불가사의한 힘으로 긍정하는 오키나와 문학의 특별한 면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한 메도루마의 작품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베트남, 대만, 한국의 제주4.3 , 일본 패전 이후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해온 이들 지역의 문학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소설 내적으로 들어와서 물방울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소설의 주인공인 도쿠쇼입니다. 도쿠쇼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철혈근황대원으로 전장에 동원되었던 인물입니다.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자리하고 있으면서, 아내 우시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나 게으른데다 여자를 밝히며, 노래, 샤미센, 도박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다리가 부풀어 오르고 그곳에서 기이한 물이 흘러나오는 신체적 병을 갖게 됩니다. 다음으로 세이유입니다. 세이유는 도쿠쇼와 동갑내기 사촌지간이며 독신입니다. 본토에 돈 벌러 나가거나 나하(那覇)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다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와 사탕수수 베는 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이라 도쿠쇼의 물방울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물방울이 묘약이라고 광고하며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시미네입니다. 이시미네는 오키나와 전투에 함께 참전했던 동료병사입니다. 밤마다 도쿠쇼 발가락의 물방으로 마시러 매일 찾아가고, 그로 인해 도쿠쇼의 과거를 인정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어느 날 낮잠을 자던 도쿠쇼의 오른 다리가 갑자기 통나무처럼 부어오르더니 터진 엄지발가락 끝에서 쉴 새 없이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도쿠쇼는 겉으로는 의식이 없는 듯 보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뿐 정신은 말짱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도쿠쇼의 발끝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물로 목을 축이기 위해 병사들의 유령이 밤마다 찾아옵니다. 그들은 50년 전, 오키나와 전투에 도쿠쇼와 함께 참전했던 전우들입니다. 갈증을 호소하던 전우와 부상당한 친구를 버려두고 혼자 도망쳤던 도쿠쇼는 이들에게 죄의식을 느끼지만, 지난 일을 한번 떠올리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올까봐 두려워합니다. 한편 낮에 도쿠쇼를 돌봐주러 오는 사촌 세이유는 발끝에서 떨어지는 이 물에 신비로운 효능이 있다는 걸 알고 비싼 값에 물을 팔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바르기만 하면 젊어지는 ‘기적의 묘약’ 이 어떤 성분인지 의심도 하지 않고 앞다투어 사들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기적의 물’의 효능이 다하여 사람들의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세이유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메도루마는 1997년에 <물방울>로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했습니다. 오키나와 출신 작가가 일본 본도에서 시행하는 주요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는 것은 오키나와 문학의 탁월성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키나와 문학이 제대로 평가되고 분석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나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오키나와 문학은 지방문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체계적이면서 본격적으로 오키나와 문학이 조명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문학에 대한 이해는 매우 미약합니다. 한국에서의 오키나와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은 극히 최근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역시 발표시점으로부터 무려 40여년이 지나서야 오에 겐자부로의 <오키나와 노트>가 한국어로 번역된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키나와어’를 작품 속에 얼마만큼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일본어와 오키나와어는 자연스럽게 호환될 수 있는 언어가 아닙니다. 오키나와의 근대문학이 일본에 비해 더디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의 외국어라고 해도 좋을 일본어로 완숙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언어상의 곤란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오키나와인들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일본 본토의 독자들 역시 동일한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오키나와는 애초에 다른 나라였기 때문에 본토와 오키나와에 대해 서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 본토와의 인식 문제를 해결해야지 오키나와 문학이 체계적으로 조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물방울이나 다른 오키나와 문학 작품을 보는 과정에서 저는 ‘국가의 기억’과 ‘민중의 기억’의 불일치를 경험했습니다, ‘일본의 기억’과 ‘오키나와의 기억’이 상당 부분 달랐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근현대 역사를 살펴봐도, 불가피하게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대국과의 관계 방식의 변화 속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처해 있던 역사적 기억이 고통스럽게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속에는 일본을 ‘외부’로 배제할 수도, 또 ‘내부’로 완전히 환원할 수도 없는 오키나와인들 특유의 기억과 역사, 아이덴티티의 문제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문제는 비단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에 걸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제주문학, 중국의 소수민족문학 등 근대 동아시아는 문학을 통해 오키나와와 비슷한 경험을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을 통한 경험 공유와 인식 개선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차별, 전쟁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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