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엇갈리는 기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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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세영 | 작성일 | 2019.06.24 | ||
조회수 | 216 | 첨부파일 | |||
하나의 사건, 엇갈리는 기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라쇼몽(羅生門』과 『덤불 속(藪の中』원작의 영화 『라쇼몽(羅生門)』-
김세영
일본어학과 2014105447
전란이 난무하던 헤이안시대, 폭우가 쏟아지는 라쇼몽(羅生門) 처마 밑에서 ‘알 수 없어. 도저히 알 수 없어.’라고 말하던 나무꾼과 승려가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남자에게 자신들이 재판장에서 증언하게 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다케히로라는 한 사무라이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와 함께 숲 속을 지나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는 바람에 날려 걷힌 천 속 마사코의 얼굴을 보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 앞을 막아 선다. 타조마루는 속임수로 다케히로를 포박하고 마사코를 겁탈한다. 그 이후 숲으로 나무를 하러 온 나무꾼은 가슴에 단도가 꽂힌 채 죽어있는 다케히로를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그리하여 재판장에서는 체포되어 온 타조마루,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 무당의 몸을 빌린 다케히로가 그 사건에 대해서 진술을 한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각자 다른 진술을 한다.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하였으나 사무라이와는 사나이 대 사나이의 진정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사코는 겁탈당한 후 타조마루가 떠나고 남편의 경멸 가득한 눈빛에 울부짖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남편의 가슴에 자신의 단도가 찔려있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다케히로는 자신을 죽이라고 마사코가 타조마루를 부추겼으나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주었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진술한다. 하나의 사건 속 세 명의 기억이 각기 다른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의 말이 진실일까? 사실 다케히로의 사체를 발견한 나무꾼은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였고 거지와 승려 앞에서 숨겨왔던 진실을 이야기한다. 타조마루와 다케히로 모두 마사코를 거두어가려고 하지 않자 마사코는 두 남자를 비웃으며 부추겨 결투하게 만들고 자신은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볼품없는 싸움을 하다가 다케히로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거짓 진술을 한 것이다. 왜 그들은 모두 다른 진술을 했을까?
이 영화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인간의 에고이즘 즉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로 인간의 진실을 폭로하는 심리묘사에 능했다. 이 영화 또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 보다는 각 인물이 말하는 다른 진술과 왜 진술이 다른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개인의 이기심’이다. 타조마루는 사실 칼솜씨가 그리 좋이 않았으나 악명 높은 산적이라는 소문을 지켜내고자 ‘이제껏 나와 20번 이상 칼을 맞댄 자는 없었소’라고 하며 정정당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사코는 자신이 두 남자를 부추겨 싸움을 부쳤다는 사실을 덮고 당시 사회의 여성상의 모습처럼 가냘프고 힘없는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다케히로 또한 ‘나는 죽고 싶지 않소. 그냥 저 여자를 데려가시오.’라고 말하는 남자답지도 못하고 사무라이답지도 못했던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꾼이다. 그는 모든 사건을 직접 보았으나 깊이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마사코가 가지고 있던 단도를 훔쳤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당시를 목격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나무꾼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나쁜 것은 잊고 싶어하고 꾸며낸 좋은 것만 믿으려 하지”. 그렇다. 이 작품은 분명 하나의 진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이기심’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편집하여 진실을 가린다는 것을 꼬집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나 또한 나에게 보다 좋은 방향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 무수히 많은 주장들이 난무하는 현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2018년 10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살아가던 20대 청년을 살해한 ‘강서구 PC방 사건’에서도 동생의 공법 여부에 대해서 가해자 김성수는 동생은 공범이 아니라고 했다가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동생은 다툼을 말리기 위해 피해자를 뒤에서 붙잡았을 뿐이며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온 줄은 몰랐다고 말했고 경찰도 이 주장을 받아들여 공범이 아니라고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피해자 유가족들을 피해자가 검도 유단자였고 가해자의 동생이 붙잡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제압하거나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피해자 유가족들의 의견을 지지했고, 경찰은 이를 의식한 탓인지 가해자 동생에게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이 외에도 빅뱅의 전 멤버 승리의 버닝썬 사건과 그 사건을 통해 밝혀진 정준영 단톡방 사건 에서도 각각의 주장이 달랐고 처음 주장과 달리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번복되는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산다. ‘내가 돈을 잘 벌기 위해서’, ‘내가 이기기 위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이러한 ‘이기심’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인간. 그 인간의 본성에 대해 『라쇼몽』은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은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는가?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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