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한구석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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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방민지 | 작성일 | 2019.06.24 | ||
조회수 | 174 | 첨부파일 | 이 세상의 한구석에.docx | ||
이세상의 한구석에
2018102948 방민지
영화는 제2차세계대전의 막바지로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때 즈음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스즈는 조금 멍한 소녀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쿠레로 시집살이를 하러 간다. 쿠레는 히로시마보다 훨씬 많은 공습 위기를 겪는 도시였고, 스즈 역시산골짜기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위기를 겪는다. 영화는 스즈가 어려서부터 현재까지 그려온 그림들을 보여준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스즈의 그림은 점점 현실적으로 변해간다. 과거 히로시마 바다의 파도를 토끼로 표현했던 그녀가, 쿠레의 바다에 있는 군함들을 연필로 자세히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한폭탄으로 그림을 그리던 오른손과 시누이의 딸 ‘하루미’를 함께 잃으면서 스즈는 절망한다. 오른손을 잃고스즈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주변 이들은 모두 스즈가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스즈에게는 그녀의 일상의 일부분이었던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것이 매우 큰 불행이었다.
스즈 화풍의 변화와 오른손의 부재 그리고 하루미의 죽음은 스즈의 절망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즉 보는이가 스즈가 되어가도록 한다. ‘스즈’라는 존재는 제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에 히로시마에 가족이 있고, 결혼 후쿠레에 거주하는 평범한 일본의 소시민이다. 당시 일본소시민의 일반적인 생활과 감정을 스즈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는이의 감정은 영화의 전개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도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인이 아닌타국인이 이 영화를 본다면 과연 스즈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까? 옥음 방속을 듣고 패전을 실감한 채 울부짖는 스즈를 보면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울부짖는 스즈의 모습은, 그녀가 겪어온 수많은 고통들을 승전을 향한 길로 여기며 이겨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팔다리가 아직 남아있기에 더 싸울 수 있다는 스즈의 말은 나라와 자신이 일치 한다고 느끼는 잘못된 사상의 물들어있음을 느끼게 했다. 또한본인의 고통에 휩싸여 자국에게 억압 당한 다양한 나라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 함께 보였다. 나라가 국민에게 생각을 강요하며, 그것이 옳다고 믿는 국민들이 존재하였기에 당시 일본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다른 의미로 보았을 때 쿠레의 사람들은 모두 전쟁과 관련 없이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지만 국가에 명령에 따른 그 자체로 전쟁에 가담한 자가 된 것이다. 즉그들은 전쟁의 가해자이자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인 것이다. 그들이 타국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패전에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더 싸우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전쟁을 위한 국가의 강요에서 비롯되었다.
<이세상의 한구석에>의작가는 한 개인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기록한 형식의 전개를 이어나가면서 그 당시의 일본 소시민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눈에 띄게편향적인 장면이나 뚜렷한 정치적 주장이 드러나지 않는 이 영화의 의도는 반전주의를 전달하는 것일 것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반전주의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위에 국민이 따른 것에 무죄나 유죄를 가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주입된 사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태인을 수용소로 이송해 죽음을 맞이하게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재판에서 호소했다. 이 재판을 끝까지 지켜봤던 ‘한나아렌트’는 ‘악의진부성’이라는 책을 쓴다. 이는 곧악이란 평범하다 못해 진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부함’이란 낡은 생각, 즉 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에 최선을 쏟았을 뿐이었다. 즉, 아이히만에게는 ‘생각하기의 무능력’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하기의 무능력’이 말하기, 행동하기의 무능력으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그는 엄청난 수의 유태인을 학살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아이히만의 모습이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일본 소시민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국민은 스스로와 국가를 바로잡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이 국가의 명령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자 했다면, ‘자국을 위해 타국에 해를 끼치는’ 일본의 당시 모습을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즈가 시누이의 딸 하루미의 죽음에 분노하고 죄책감을 느낄 때, 그녀는자신이 하루미의 반대쪽 손을 잡고 있었어야 한다고 자책한다. 하루미 대신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생각한다. 그러나 스즈 자신을 탓하기 전에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국가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수동적으로국가에 의해 움직이는 그녀와 시민들의 모습이 하루미를 앗아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쿠레는 군사 공업 시설이 많은곳이고, 실제로 강제 징용된 타지인들이 많은 도시였다. 그중에는 조선인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외국인과의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다. 스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몇 년간 쿠레에 머물면서 수 많은 외국인들을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옥음방송 이후 광복을 맞이한 조선인들이 게양한 태극기를 보고서야 자국이외국을 억눌러오면서 유지되었음을 인지한다. 이는 평소 스즈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감독 역시 스즈가 게양된 태극기를 보면서 우는 행동은 그 동안 자신이 타국을 억압하고 그곳에서 수탈한 쌀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즉, 스즈가옥음방송을 듣고, 게양된 태극기를 보면서 울부짖었던 것은 자신이 간접적으로 전쟁에 가담했다는 것을 깨닫고안타까움과 분함을 느꼈기 떄문인 것이다.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 속 전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제외하고는, 스즈와 그녀의 가족들의 삶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또 아름답다.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마을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지내는 모습 속에서 보여지는 평화로움, 그리고너무나도 상반된 전쟁 피해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아픔들을 아무렇지도않게 여기는 영화 속 일본 시민 그 자체였다. 비록 그들에게 책임이 있을지라도, 전쟁으로 인한 그들의 아픔에, 타국의 억압을 통해 유지한 자신의생활을 반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면 그것이 나라 간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갈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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