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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현대명작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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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도쿄 생각』
작성자 전주호 작성일 2019.06.24
조회수 126 첨부파일
도쿄 생각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출판
 
글항아리
 
발매
 
2016.07.24.

※ 본 리뷰는 서적『도쿄 생각』(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유순미 옮김, 도서출판 글항아리, 2016) 에 수록된 작품

(「도쿄 생각」, 「유년 시절」) 중 「도쿄 생각」만을 다루는 리뷰임을 밝힙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라고 하면, 일본 근대 작가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할 것이다. 이것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쟁쟁한 작가들이 국내에서 몇 번이고 재출판되며 유명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다니자키 특유의 에로티시즘, 페티시즘적인 탐미주의 문학 세계가, 지금까지는 활발히 출판되기에도,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에도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다니자키 문학의 작품성이 결코 나쓰메나 다자이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른 적이 있으며, 1965년에 다니자키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아니라 다니자키의 작품이었으리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다. 비록 노벨문학상이 작품성의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다니자키가 갖는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도쿄 생각」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34년 1월부터 4월에 걸쳐 『중앙공론』에 연재한 에세이이다. 전형적인 '도쿄 토박이'였던 다니자키의 근대화 물결에 대한 탐미주의적 욕망과 좌절의 정서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야기는 도쿄 인근의 온천 관광지 하코네에서 시작한다. 1923년 대지진이 도쿄를 포함한 간토 일대를 덮쳤을 때, 다니자키는 도쿄 앞바다의 요코하마에 처자식을 둔 채 홀로 하코네에 있는 상황이었다. 멀리 있는 처자식의 생사는 물론이고 자신의 안위마저 위태로운 찰나에, 그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회고한다. "잘됐어. 이걸로 도쿄는 훨씬 더 나아질 거야.’라며 환희가 끓어올랐다" (p.24) 이러한 당시 다니자키의 생각은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메이지 시대(1968-1912) 말기에서 다이쇼 시대(1912-1926)로 접어든 도쿄의 모습에 대한 그의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고풍스런 정취도, 근대 도시의 서양적 세련됨도 갖지 못한 당시 도쿄의 상황을 다니자키는 이렇게 회고한다. 

 

제아무리 도쿄의 역성을 드는 사람이라도 세계대전 전후로 호경기를 맞고 있던 당시의 제국 도시를 멋진 대도시라고 생각한 이는 없을 것이다그 무렵 신문은 온통 도쿄의 교통 혼잡과 불완전한 도로 상황을 꼬집었다. 도쿄는 도회지가 아니다그저 큰 마을이다혹은 마을의 집합이다.’ 라며 일본인이나 외국인 할 것 없이 욕을 했다."(p.17) 

 탐미주의자 다니자키에게 있어, 간토 대지진이라는 대사건은 참극보다도 도쿄의 현 상태를 일신할 기회로 비쳤던 것이다. '불타버린 벌판에 홀연히 생겨날 근대 도시'에 대한 그의 기대감은 더 나아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의복에 대한 변화에까지 미쳤다. (p. 25-26) 팥죽색 기모노 차림의 처녀들을 대신해, 곧은 다리에 하이힐을 신은 외국 스타의 몸매와 옷차림을 겸비한 여성을 바란 것이다. (p.23) 그러나 대지진으로부터 복구되어가는 도쿄의 모습은 그가 바란 것과 거리가 있었다.

 

복구가 활발해지자 각종 사업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타지방 사람들이 죄다 도회지로 몰려들었던 것이다도쿄는 이 끔찍한 인구 증가와 팽창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도로를 포장하고 아파트를 짓자마자 엄청난 수의 자동차가 수입되었고 변두리에는 엉성하게 날림으로 지어진 임대주택이 늘어났다. (p.18)

 언제 참사가 있었냐는 듯, 도쿄의 인구는 오히려 순식간에 불어나며 10년 사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도시의 모습은 혼돈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10년여의 시간과 함께 다니자키의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내가 10년 후의 도쿄를 예견했다고 믿었던 것은 크게 빗나갔을 뿐만 아니라 내일 당장 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오늘날이렇게 변해버린 제국의 도시를 보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나도쿄가 서구화되자 서양을 싫어하게 돼버린 나그리고 미래의 도쿄에 희망을 품는 것보다 유년시절의 도쿄를 그리워하는 나아아세상만사가 새옹지마라는 게 이런 것 아닐까." (p.36)

 도쿄의 근대화.서양화를 부르짖던 다니자키는, 마치 자신이 그토록 당시의 도쿄를 싫어했던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

처럼 변해 버린다. 어느새 서양 관광객보다 잘 차려입게 된 도쿄 여인들에게서 그가 바라던 탐미는 찾을 수 없었던 데다(p. 90) 심지어 본디 일본인의 피부나 옷에는 나무 성질을 그대로 드러낸 예전 건축이 가장 적합하다(p.88)라고 말하며 서양적 건축물을 부정하게 된다.

 

 도쿄는 식습관마저 '동물이 쩝쩝거리는 것 같다' (p. 50) 라고 할 만큼 도쿄를 비난했던 다니자키지만, 그에게 있어 도쿄는 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기도 했다. 어쩌면 다니자키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도쿄를 보며 은연중에 느낀 향수와 상실감을, 근대화와 탐미주의적 욕망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에세이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나는 앞서 말한 이유로 도쿄를 싫어하게 됐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금도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다시 말해 내가 봤던 흉은 미증유의 천재지변과 무례한 근대 문명이 자신의 고향을 황폐하게 만든 탓에 일가친척을 잃은 인간의 한일지도 모르겠다. (p.91) 

 다니자키의 이러한 '한'은 기술 발전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매체의 발달로 비대해진 욕망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 도시인들도 똑같이 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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