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타미오 「생명의 초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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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보름 | 작성일 | 2019.06.25 | ||
조회수 | 557 | 첨부파일 | 서평2.png | ||
호조 타미오, 「생명의 초야」 2018102956 윤보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 조사하다 원폭 슬럼에 대해 알게 되었다.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사건 이후 그 피해가 매우 심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빈민층이나 부라쿠민 등이 그곳에서 슬럼을
형성해 살았다고 한다. 이에 원폭 슬럼에서 살던 사람들이 차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차별’에
집중하게 되었고 완벽하게 같은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한센병 환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센병은 예전부터 전염성이
강한 병으로 인식되어 차별 받아왔다. 때문에 이 차별에는 격리가 빠지지 않았다. 푸코(Foucault)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추방된
존재로서 가혹한 공간분리, 거리 두기, ‘정상인’과의 비접촉의 규칙 등을 포함하는 권력의 타자로 존재해왔으며 환자는 사회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져 배제되어왔다.[1] 일본에서는 1907년에 처음 한센병에 대한 법률이 제정 되었는데 이때 이후 한센병 환자에 대해 격리 배제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2]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 역시 1916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소록도에 이주 당했다. 이에 따라 한센병과 관련된
각종 문학에서는 반드시 그들이 격리되는 장소에 대해 서술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그들이 살아온
지역을 때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이 삶이나 생활이 ‘지역’에서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가 중요하다. 또한 외부인이 그 지역을
보는 시점 역시 중요한데, 여기서 그들이 생활하는 지역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환자가 아닌 자들과 환자
이 둘을 나누는 경계이자 이계가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살아 온 공간의 모습을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생명의 초야」의 저자 호조
타미오는 1914년 경성(현 서울) 태생의 작가이며, 1936년 발표한「생명의 초야」로 일본 문단에
알려졌다[3]. 그녀는 실제 한센병 환자이며, 환자라는 마이너리티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조선 태생의 사람이라는 마이너리티도 존재했다. 비록 성장은 일본에서 했을지라도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점은
그녀에게 있어서 차별을 가중시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발병 이후 히가시 무라야마시의 국립요양소타마전생원(国立療養所多磨全生園)에 입소했다. 「생명의 초야」는 그녀가
입소 후 생활하며 겪은 첫날 밤의 일들을 주인공 오쿠다를 통해 드러낸다. 그녀가 직접 경험한 일을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이기에 소설 곳곳에는 타마 전생원의 모습이 숨어있다. ‘사람 사는 집처럼 뵈는 건물은 한 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동경에서 불과 2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지만, 첩첩 산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조용함,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호조 타미오, 「생명의 초야」)[4] 그녀가 입소한 타마 전생원은
도쿄에선 고작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거리감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나타냄이 아닌 사회에서 추방 당한
그녀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당시 한센병 요양소들은 정상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 세워졌었다. 그에 비하면 타마 전생원은 그 위치가 매우 용이해 보이나 격리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특히 타마 전생원은 하나의
마을처럼 꾸며 한센병 환자들을 외부세계에 나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전생원의
모습은 그들에게 철창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을 격리시키는 하나의 장치로 쓰였다. ‘그들은 오쿠다처럼 병원 내부를 들여다보고 무언가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오쿠다는 바라지 않던 곳에서 사람과 마주쳤다고 생각하며 밀쳐올렸던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아래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호조 타미오, 「생명의 초야」) [5] 오쿠다가 입소 직전 병원
밖의 마을을 돌아 볼 때 있었던 일을 묘사한 부분이다. 필자는 이 부분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거주지이자 치료를 위한 전생원은 전생원 밖의 타인들에겐 마치 이계처럼 여겨지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들이 혐오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분리해놓은 일종의 경계로 말이다. 그렇기에
이는 그녀에게 결국 모자를 다시 눌러쓰며 자신이 이계에서 왔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계로서의 전생원은
전생원의 울타리로도 표현이 되고 있다. 그녀가 전생원 생활에 기시감을 느끼고 구속당하는 기분을 느낄
때마다 전생원의 호랑가시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등장한다. 호랑가시나무 잎은 끝이 매우 뾰족하기에 접근을
금지시키는 울타리를 만들기에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호랑가시나무 울타리는 그녀가 울타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완벽히 타자화 되며,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그녀에게
그 울타리는 단순한 땅의 경계가 아닌 죽음과 삶의 경계이기도 했다. 이렇듯 소설 속 전생원의
풍경들은 주로 하나같이 그들을 분리하는 수단이다. 그들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간 곳이 결국에는
그들을 압박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당대 사회 그리고 히가시 무라야마시의 일상적인 모순이었다. 이런 모순
속에서 삶을 이어온 그들의 잊혀진 이야기를 지속해서 상기시키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의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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