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무 사이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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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배유진 | 작성일 | 2019.06.25 | ||
조회수 | 321 | 첨부파일 | |||
믿음과 의무 사이에서 2017102717 배유진 어느 왕국에 디오니스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이 왕은 도무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믿지를 않는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의심하는 것이 정당한 마음가짐이다.”
그에 비해서 메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이다.” 메로스는 마을의 목동이며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기에 악함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민감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결혼하게 되자 혼수품을 사러 도시로 나온 메로스는 도시가 유난히 적막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인지한다. 불신과 의심이 강한 디오니스 왕이 마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던 것이다. 격분한 메로스는 왕이 살고 있는 성으로 들어갔다가 잡히고 만다. 메로스의 품에서 칼이 나오자 왕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메로스는 마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자기는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자, 왕은 그것도 전부 가식일 뿐 막상 실제로 죽는 순간이 다가오면 울고불며 살려달라고 빌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메로스는 자신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기에 절대로 살려달라고 빌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메로스는 곧 처형당하게 될테지만 여동생을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3일간의 유예를 구하고 자신이 3일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친구 세리눈티우스를 죽이라며 그를 인질로 두고 떠난다. 그러나 왕은 어차피 메로스가 돌아올 리 없다고 확신하며 미소를 띠운다. 메로스는 마을에서 여동생의 결혼식을 마치고 3일째 되는 새벽에 도시로 향했지만 도중에 홍수와 산적을 만나 기진맥진하고 한 때 거의 포기하려고 한다. 본인은 왕의 뜻대로 되고 있다면서 자신이 영원한 배신자이자 불명예스러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를 따라가 그 물을 마시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걷기 시작한다. 피로회복과 동시에 전력질주를 거듭하여 일몰직전에 왕에게 도착한다.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는 서로 단한번의 나쁜 꿈을 꾼 것을 고백하고 서로 주먹으로 때린 다음, 껴안고 울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본 디오니스 왕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을 모두 보내준다. 이것이 소설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인간실격이나 사양과 같은 작품을 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밝고 희망적인 내용에 복잡한 스토리 플롯 없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믿음과 관련된 교훈을 주는 탓인지 일본의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적도 있으며 이로 인해서 일본의 국민소설로 거듭하였다. 이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같은 작품들이 너무 압도적으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잘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쓴 작품들에는 항상 우울하고 어두침침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며 밝고 재밌는 내용의 이야기도 다수 존재한다. 달려라 메로스가 이것에 가장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작품이 나온 것은 창작배경과 동기가 굉장히 단순했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고민이나 막힘없이 작가가 이야기를 단순에 써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하고 템포가 빠르며 일관된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의 탄생은 다자이 오사무의 친구 단 카즈오와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다자이가 몇 달째 여관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자 무슨 일인가 살펴보러간 단은 다자이가 술 마시는데 돈을 탕진해서 돈을 내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자이는 여관 주인에게 단이 인질이라면서 놔두고 돈을 구해오겠다고 떠난다. 며칠을 기다려도 다자이가 오지를 않자 술집에 부탁하여 외상으로 미룬 뒤 다자이에게 가보니, 그는 스승인 이부세와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다자이는 장기를 두면서 돈 좀 빌려달라고 말할 타이밍을 노렸지만 계속해서 타이밍을 놓쳐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인간실격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처음 접했던 나에게 굉장히 신선하고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달려라 메로스 또한 고등학생 떼 처음 읽었는데 그 때는 인간실격에 너무 빠져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작품도 썼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읽은 지금은 단순히 친구와의 우정과 신뢰라는 이야기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믿었던 친구들과 아내에게서 큰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실격자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그런 그에게서 이렇듯 ‘사람의 대한 믿음이 올바른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 하다고 볼 수 있겠다. 디오니스는 주인공 메로스와는 다르게 사람의 마음은 결코 믿지 않으며 항상 뭐든지 의심해보는 버릇이 있는 인물이다. 메로스는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친구에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조금씩 마음이 꺾이게 된다. 작중에는 ‘믿은 나머지 패했다는 것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영원한 승리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더라도 치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아, 믿어서 성공하고 싶다.’ 라는 대사가 나오며 ‘사랑이라는 존재도 결국은 의무수행이 아닐까?’라고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믿는다는 뜻의 ‘信’과 의무의 ‘義’가 결국에는 서로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신의(信義)라는 주제가 작품의 전체를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단순히 믿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는데서 그치지 않고 메로스의 대사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람을 믿고자 하는 마음과 의심하고 배신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것을 모두 다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신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를 믿고 있다. 나를 믿고 있다. 조금 전 악마의 속삼임은 꿈이었다. 아주 나쁜 꿈이었다. 잊어버려. 온몸이 피곤할 때는 문득문득 그런 나쁜 꿈을 꾸는 거다. 메로스,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역시 넌 진정으로 용감한 자다. 다시 일어서서 달릴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고맙다. 나는 정의로운 자로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아! 해가 저물고 있다. 점점 해가 저물고 있다. 제우스 신이시여, 조금만 기다려주소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으로 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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