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시대에 대한 나가이 가후의 사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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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용수 | 작성일 | 2019.06.24 | ||
조회수 | 172 | 첨부파일 | |||
전란의 시대에 대한 나가이 가후의 사상 -‘강 동쪽의 기담’과 ‘불꽃’을 읽고 2014102837 김용수
나가이 가후의 ‘강동 쪽의 기담’을 읽고 그가 원했던 에도의 향수에 대해 고찰을 했다. 그러자 제 1,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나가이 가후라는 작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에 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강 동쪽의 기담’ 뿐만 아니라 그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불꽃’을 읽고 에도적 향수를 그리워하던 작가 나가이 가후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강 동쪽의 기담’은 철저히 개인적인 에세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인적이기에 그가 원했던 도쿄 시타마치의 삶이 잘 드러나고 또 이에 반대되는 현재 도쿄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스미다강을 배경으로 활동했으며 스미다강 동쪽의 사창가를 그리워했다. 그곳에 마치 그가 원하는 세계가 있는 듯 사창가를 방문했으며 그곳에서 시타마치의 순수함을 노래했다. 그가 원하던 에도적 향수는 관동대지진 이후 사라져 버린 모습이며 오직 스미다강 동쪽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이셔츠의 첫 번째 단추는 풀고 넥타이는 매지 말 것, 머리카락은 빗질 한 번 안 한 것처럼 헝클어뜨릴 것, 되도록 무릎이나 엉덩이가 해질 만큼 낡은 바지를 입을 것, 구두 말고 낡은 나막신을 신되 뒤축이 닳은 것을 찿아 신을 것. 그가 생각 하고 실제로 하고 다녔던 시타마치의 모습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외적인 모습 뿐만아니라 그곳에는 시타마치의 감성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 사창가를 더러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순수함이 남아있는 공간으로 손님이 오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손수 차를 대접하고 문명의 이기인 엔타쿠와 네온사인이 들지 않는 곳. 이곳이 바로 에도적 정취 그 자체 였던 것이다. 거리의 광경역시 긴자는 천박하게 외관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겉만 번지르르하며 속은 낡았지만 이곳은 소박하지만 겸손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도 않고 유혈이 낭자한 싸움도 거의 볼 수 없다. 이곳은 시타마치들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 고 있는 이웃의 정이 있는 소시민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가이 가후는 이 장소를 ‘오유키’라는 기생에게 투영해서 보았다고 생각한다. 긴자나 우에노의 탐욕스러운 여급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순박한 구석이 있고 아직 까지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여급. 이 여급과 같은 스미다강의 동쪽을 그는 에도적 정취라고 보았으며 이 곳을 그리워했다.
이렇게 에도로의 회귀를 주장한 작가가 제 1차 세계대전 후 그리고 전란의 기간에는 어떤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 지는 그의 또 다른 작품 ‘불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전쟁에서의 승리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근대화의 발걸음으로 생각되었다. 과거로 돌아가기를 지향했던 그에게 제1차 대전의 승리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곳으로 걸음을 뗀 것과도 같았다. 승리의 기쁨에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그저 승리와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에 함몰되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는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한편으로 이러한 진보에 대해 체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떻게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진보의 물결 앞에 한낱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그는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방관자가 되었고 또, 현대 문명의 이방인이 되어 현실에서 멀어져 갔다. 처음 이 작품을 읽기 전에는 그가 전란의 시대를 맞아 에도로의 회귀말고 또 다른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가이 가후는 ‘불꽃’을 통해 다가오는 진보의 물결에서 에도적 정서로의 회귀를 외쳤지만 결국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게 되고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결말이 다소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의 우려대로 일본은 진보의 파도에 함몰되어 패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날카로운 혜안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된다. 제국주의의 파도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 문인이라는 평가가 알맞은 작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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