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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문학의 역사
작성자 정재오 작성일 2019.05.14
조회수 411 첨부파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인류 최초로 원폭 피해를 받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나 두 지역의 원폭 문학은 양적으로나, 방향성 측면으로나 큰 차이를 보인다. 먼저 작품이 발표된 수를 기준으로 분류할 경우 히로시마에 비해 나가사키에서의 피폭과 관련된 문학이나 기록 작품류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1. 지방적 성격의 특수성 2. 문학 환경의 차이 3. 평화운동의 미약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1번에 집중하는 한편, 어째서 3번 같은 상황이 발생했는지도 조명하고자 한다.

 

원폭문학은 194586일 오전 815,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한 처절한 체험기록에서부터 시작한다. 주로 그 당시의 비참함에 대한 절규, 절망, 울부짖음, 항의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원폭문학은 일본 내에서는 설득력이 있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국제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결국 피폭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일본 정부와 그에 동조한 국민임에도, 그를 부각하는 반성과 성찰이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폭에 대한 항의와 피해자성만을 부각시킨다는 지적은 이미 숱하게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원폭문학의 발생 이유는 지역적 특수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원폭 피해를 받은 곳이 오직 이 두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양과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단지 피폭 당했다는 공통점에서만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의 지역적 차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폭 문학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1945~ 1951점령, GHQ 언론감시

2: 1951~ 1955점령 해제, 전후 부흥

3: 1955~ 196160년 안보 문제의 시기

4: 1961~ 1970학생운동 70, 정치의계절

5: 1970~ - 냉전 격화, 전쟁 체험 풍화, 학생운동 좌절

 

1기는 미 점령군에 의한 보도관제 시기로, 원폭이 초래한 피해를 국내여론에 호소할 수 없었다. 1948년까지는 원폭 문학에 정치적 색채가 크게 가미되지 않았던 바, 한국에 번역, 수입된 원폭문학의 수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 4기가 되어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자, 일본 정부와 매스컴은 이를 기회로 히로시마를 평화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보이게 되었다. 예컨대 성화 봉송주자로 히로시마에서 출생한 남성을 선정하여, 그를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부터가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매스컴 역시 정부의 그런 의도에 동조하여 히로시마 = 원폭 = 평화 도식을 완성시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큰 효과를 거두어, 히로시마 = 원폭 = 평화라는 도식을 일본인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 문학이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 이후, 히로시마 원폭 문학의 주류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가해자성보다는 피해자성을 드러내는 데에 주목하는 경향이 크다.

2.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경향이 크다.

3. 피폭에 대한 분노가 짙게 드러나는 경향이 크다.

4.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개인에 주목하는 경향이 크다.

5. 피해 지역에 있었던 소수자들을 숨기는 경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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